이번 온라인 책담화때 참가자들이 남기신 질문과 김혜정님의 답변을 정리하였습니다.
답답했던 나와 내 주변이 '동화'의 빛으로 환해지기를 바라며 행사 후기로 나눕니다.
20/21 '동화' 릴레이 책담화 - 『동화의 지혜』편
4회_ 홀레 할머니
2020년 1월 23일 (토) / 온라인 / 진행 김혜정님
Q. 홀레 할머니 이름
A: 홀레는 hole, 구멍은 세상의 무언가를 깊이 빠뜨리는 곳인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홀레 할머니가 사는 그곳은 깊은 구멍 속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도 토끼굴 속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안에는 새롭고 신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이처럼 구멍이라 함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를 나타낸다. 이 이야기에서 구멍은 ‘우물’이었다. 우물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느껴지는 향기, 소리, 빛들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걸 상상해볼 수 있다.
신동흔 선생님의 옛이야기 강좌에서 말씀하시길, 캐릭터 둘이 굉장히 대조적인데 착한 캐릭터는 자신의 품성대로 무엇이든 선하고 부지런히 펼쳐나가서 결말이 행복한데 그것을 본 못된 캐릭터는 착한 캐릭터를 늘 따라하지만 본질은 알지 못하고 그 일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내야 하는지 모른 채 표면적인 것만을 따라한다, 무언가를 따라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불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동화를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정말 동화를 들려준다는 게 뭔지, 동화를 듣는다는 게 뭔지에 대한 본질을 모른 채로 하면 무조건 따라하게 된다. 당연히 초기 단계에서는 모방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이들이 하는 모방은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방이고 그것을 통해 배우며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 어른도 모방을 통해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야지 그저 모방만 하는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홀레 할머니는 모방만 하는 사람의 최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자기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서사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나 다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에 무엇을 느끼고 행동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다 가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만났을 때 ‘이건 꼭 내 이야기 같아.’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의 서사가 이야기에서 접점을 만났을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와 관계 지어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과정은 좋은 과정이다.
Q. 소녀들의 우물 속 여정에서 오븐 안의 빵, 잘 익은 사과는 어떤 의미인지...궁금해요
A: 식물의 세계가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은 에테르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런 곳에서 영혼과 정신을 가진 존재로서 다시 깨어난다. 이번 세상에서는 죽는 것이지만 저 세상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일 수 있다. 그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빵이다.
소녀는 이 번 생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학에서 의지라는 것은 이번 생애에서 발현되지 않고, 미래를 위한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이번 생에 가질 수 있는 것은 의지의 싹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에 발현된다. 이 이야기가 홀레 할머니 이야기에서 보여지고 있다.
소녀가 내 안에 미래를 위한 싹을 틔우고 죽고 나서 내가 경험한 많은 것들이 빵이 되어 다 구워져있고 사과가 되어 다 익어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은 것들을 죽은 후에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 그것들을 곱씹으며 나의 삶의 경험들과 지혜가 빵과 사과의 형태로 놓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빵도 꺼내주고, 사과도 따주면서 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녀는 그것을 나를 위해 가져가지 않고 놓아둔다.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다. 살면서 경험한 것들은 나를 위해 쓰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자양분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의식의 발전을 이루면 아주 큰 파급 효과를 가지게 된다. 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다.
Q. 땅속나라인데 베개를 털면 눈이 내리는 게 신기했어요. 눈이 내리려면 하늘나라여야 할 것 같은데...그리고 할머니의 큰 이가 왜 무서웠을까요?
A: 눈이 내린다는 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온다. 정신세계에 머물 때에는 정신도 영혼이 거치는 과정처럼 무수한 과정을 겪어나간다. 그러면서 새로운 탄생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소녀가 지금의 삶이 너무 좋지만 떠나고 싶어한다. 이는 땅에 대한 지향을 다시 갖게 되는 것을 애기한다. 생과 생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려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다시 만나야하는데, 지금 생애에서는 이루지 못했지만 다시 해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위해 거기에 맞는 몸을 만들어가는 결정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눈의 결정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깃털을 터는 과정은 내가 다음 생애에서 입을 옷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가 크다는 것, 이는 에테르를 다스리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 같은 존재가 바로 홀레 할머니이다.
Q : 할머니랑 사는 것이 불만 없었는데 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요?
A: 이 땅에서 무언가 다시 하고 싶어 하는 것. 자기 안으로부터 솟아나는 의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만7세까지는 몸을 발달시키는 시기(의지)이다. 이때 아이들은 간섭받지 않는 보호막 속에서 제대로 잘 발달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라는 것은 자기를 끌고 가는 힘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하는 힘이기도 하다.
소녀가 자기의 의지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이다. 홀레 할머니가 문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출생의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녀는 황금비를 맞고 문을 통과한다. 이 세상에서 쌓아온 모든 것들, 정신세계에서 열심히 일하고 준비한 것이 황금과도 같은 지혜, 행운 재능 등으로 소녀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반면 계모의 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요행만을 바란다. 이 소녀는 모든 것을 똑같이 거쳐왔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되고 역청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 역청은 평생도록 지워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다음 생에서 불행, 불운, 불균형 등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은 카르마/업이라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다음 생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원인이 되어 나의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된다. 카르마라는 것이 나의 전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Q : 친딸에게도 빵을 꺼내가게 하고 사과를 따가라고 하는 것은 게을렀던 친딸에게도 정신세계에서 지난 삶을 잘 깨달을 기회를 주는 건가요?
A: 정신세계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게을렀던 딸에게도 자신의 일을 돌아보고 이 일을 하면 어떻게 될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정말 모든 존재는 자신을 계속 더 발전시켜가기를 원한다.
Q : 딸이 3번의 삶을 살았는데, 이어진 한 명의 삶이 성품, 기질 성향이 달라지지 않게 느껴져요. 다시 온 삶에서 황금 옷을 입고 의붓 딸의 삶을 살거나 타르를 입고 친딸의 기질과 성품의 삶을 살 수 있나요? 한 사람의 삶이 변화되려면 어느 세계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른 삶을 살아야만 발전되거나 변화될 것 같은데, 아이가 태어날 때는 이미 자신의 씨앗을 품고 오게 되잖아요. 운명을 거슬러야만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요?
A: 정신세계에서 머물 때 내가 계획했던 삶이 있을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가 필요하고, 집을 짓다보면 다른 생각이 들 것이고 설계도와 다른 집으로 지어지게 되는 것처럼 정신세계에서 준비했던 삶과 다르게 더 열심히 살면서 카르마를 해소하게 될 수도 있고, 카르마를 더 쌓게 될 수도 있다. 황금 옷을 입고도 굉장히 어려운 삶을 선택해서 살게 될 수도 있다.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도 있다. 반면 황금 옷을 입고 아주 편안한 쉬는 삶을 선택해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역청을 뒤집어쓰고 태어났지만 공주처럼 살 수도 있고 자신의 카르마에 다른 카르마를 더 씌워서 살게 되는 걸 수도 있다. 이번 생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갈 수도 있다. 역청을 뒤집어쓰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삶에서 무언가 깨닫고 나의 삶을 바꾸고 나의 카르마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런 자유가 주어진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카르마에 얽매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유 의지를 통해서 나를, 나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Q : 이야기 들려줄 때 초를 켜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같은 아침인데도 초의 불빛은 다 다르다. 아이들은 이런 것도 다 관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경과도 하나가 된다. 밀랍초가 만들어내는 따스한 분위기가 동화를 받아들이는데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 초는 주변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나의 내면의 불을 밝히는 것, 동화가 가지고 있는 빛을 촛불의 빛과 조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초가 자기를 태우면서 주변을 밝히는 것을 보며 희생의 의미를 느낌으로 가져 갈 수 있다.
Q : 홀레 할머니를 통해 내 속의 친딸과 의붓 딸, 홀레 할머니를 만난 기분이 듭니다. 의지와 정신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내 속에서 깨닫기 위해 나를 수련하고 정화되고 깨어나는 내가 되기를.. 그래서 다음 세상에 작은 빛을 비출 수 있는 거듭나기를 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홀레 할머니, 친딸, 의붓딸의 형상이 내안에 모두 담겨있다고 바라봐도 될까요?
A: 당연히 그렇다. 모든 동화에 나오는 존재들은 다 내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 모든 존재들이 내 안에 다 살고 있고, 내 안의 홀레 할머니는 나를 정신적인 존재로 깨우고 이끌어주는 작업을 항상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 안에는 누구나 게을러지고 이기적이 되고 싶어하는 친딸의 모습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을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온 힘을 다해 정성껏 살아가는 소녀 역시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