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슈타이너

내 삶의 발자취_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루돌프 슈타이너 저술 (GA28)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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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와 영혼세계를 물질 세계와 똑같이 중시하는 인지학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 책 『내 삶의 발자취』는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인지학 협회>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루돌프 슈타이너에 대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이 상황을 염려스럽게 본 측근들 요구에 따라 루돌프 슈타이너가 주간지에서 자서전 형식으로 38회에 걸쳐 연재한 글이다.(루돌프 슈타이너 전집GA28)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은 그가 창시한 인지학적 정신과학의 연구 방법이 생겨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이 책의 번역을 8년 전에 마친 후 수없이 교정해 온 옮긴이 최혜경은 이번 책을 통해 '루돌프 슈타이너 전문 번역가'로서, 또한 '조형 예술가'로서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선사한다. 수수께끼처럼 남는 주제에 대하여 꼼꼼한 ‘옮긴이의 각주’를 덧붙였으며, 책 표지에 실린 예술작품(부조)을 직접 작업하였다. 

푸른씨앗은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목록」 총 354권을 독일어 완역으로 정리하여 별책 부록으로 제작하였다.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목록」 은 푸른씨앗 홈페이지 자료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출간 기념으로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목록」이 별책 부록(사진 왼쪽)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값 3,000원 ★판매처 푸른씨앗

 

목차

1861~1879_크랄예베치/뫼들링/포트샤흐/노이되르플

1. 어린 시절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물질 세계와 정신세계
 하인리히 강을│프란츠 마라츠 │ 카를 히켈
2. 실업 학교 시절│라우렌츠 옐리넥│후고 폰 길름│프란츠 코플러│알베르트 뢰거
 │칸트│『순수 이성 비판』

1879~1890_빈

3. 대학 시절│철학과 자연 과학│공간과 시간 개념│피히테 『지식론』│괴테 『파우스트』와 실러 『인간의 미학적 교육에 관한 서간문』│카를 율리우스 슈뢰어│로베르트 침머만│프란츠 브렌타노│헤겔│테오도르 비셔│에드문트 라이틀링어│펠릭스 코구츠기
4. 젊은 시절 친구들│빈 공과 대학 독일 독서회
5. 과학적 탐구│물리학적 광학과 괴테 색채학
6. 숙명적 가정 교사 생활│슈페히트 가족│에두아르드 폰 하르트만│요제프 퀴르쉬너 『독일 민족 문학』│괴테 자연 과학 논설
7. ‘미지의 지인’│빈 문화계 인사들과의 교류│마리 오이게니│델레 그라치에│빌헬름 노이만│프리츠 렘머마이어│페르헤르 폰 슈타인반트
8. 예술과 미학에 관한 성찰│로베르트 하멜링│관념주의와 사실주의 미학│알프레드 포르마이│일마 빌보른│도이췐 보헨슈리프트 편집
9. 바이마르, 베를린, 뮌헨 여행│괴테-실러 유고국│에두아르드 폰 하르트만│마리 랑│로자 마이레더
10. 『자유의 철학』
11. 신비주의와 신비주의자│정신 인식의 표현 형태
12. 숙명과 자유│괴테와 실러의 정신적 교류│『인간의 미학적 교육에 관한 서간문』과 『초록뱀과 아름다운 백합』
13. 부다페스트와 지벤부르크 여행│모리스 치터│브라이텐슈타인 부부│슈페히트 가족에 대한 회상│이그나츠 브륄│요제프 브로이어

1890~1897_바이마르

14. 괴테-실러 유고국 활동│박사 학위와 하인리히 폰 슈타인│베른하르트 수판│구스타프 폰 뢰퍼│헤르만 그림│율리우스 발레│라인홀트 쾰러
15. 에른스트 헤켈│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루드비히 라이스트너│올덴 부부
16. 가브리엘레 로이터│오토 에리히 하르트레벤│세계관의 상대적 정당성
17. <윤리 문화 협회>│『자유의 철학』의 목표
18. 니체와 괴테│엘리자베드 푀르스터-니체│프리트 쾨겔│오리겐 뒤링
19. 자연 과학적 인식의 한계│일원론에서 인식 가능성│오토 프뢰리히│파울 빅케│리하르트 스트라우스│하인리히 첼러│바이마르 예술계의 빛과 그림자
20. 에두아르드 폰 데어 헬렌과 그 부인│당시 사회 문제│하인리히 프랭켈│‘미지의 지인’│『자유의 철학』│아우구스트 프레제니우스│프란츠 페르디난드 하이트뮐러│요제프 롤레첵│막스 크리스트립
21. 다고베르트 노이퍼와 헤겔 흉상│루돌프 슈미트│콘라드 안조르게│안조르게-크롬프톤 모임│『괴테의 세계관』│파울 뵐러
22. 영혼-격변│세 가지 인식 양식
23. 도덕적 개인주의│물질주의의 본질

1897~1907_베를린/뮌헨

24. 『마가진 취어 리터라투어』│<자유 문학 협회>│오토 에리히 하르트레벤│프랑크 베데킨트│파울 셰르바르트│발터 하를란
25. <자유 연극 협회>│연극 연출과 비평│당시 저술 내용에 대한 오해
26. 『신비적 사실로서 기독교』│영혼 시험과 아리만적 존재들│인식-제례를 통과-하다
27. 시대 전환기│헤겔과 슈티르너│존 헨리 맥케이
28. 베를린 <노동자 학교> 교육 활동│당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영혼 상태
29. 루드비히 야코봅스키│<디 콤멘덴>│마르타 아스무스│<프리드리히스하게너>│브루노 빌레│빌헬름 뵐셰│<자유 대학>│<조르다노-브루노-연맹>│‘낡은 지혜’와 현대 정신 인식│프리드리히 엑슈타인
30. <신지학 협회>│브록도르프 백작 부부│마리 폰 지버스│런던 신지학 총회│다윈주의│헤켈│형상적 상상으로 관조한 유기체의 진화│『철학의 수수께끼』│『19세기 세계관과 인생관』
31. 전前-인지학적 활동에서 ‘정신세계의 문’ 앞에 머물기│한스 크래머│아르투어 딕스│마리 폰 지버스│신지학 협회와의 갈등│<동방의 별>
32. 인지학 운동의 추구와 난관│빌헬름 휩베-슐라이덴│『루시퍼-그노시스』│비학 학회│블라바츠키│런던 신지학 총회│애니 베전트│<철학-인지학 출판사>
33. 『신지학』의 구축 양식│자명종으로서 인지학 서적
34. 인지학 운동과 예술│언어의 고유성을 살리는 낭독과 연극 예술
35. 인식 사조에 있어 한계│막스 셸러│인지학적 활동의 결과로서 저술물과 강의록
36. 야커 협회│정신-내용으로서 제례 의식-상징
37. 인지학 운동과 예술│파리 신지학 총회│에두아르 슈레│파리 연속 강의
38. 인지학 운동 초반의 두 기점 베를린과 뮌헨│헬레네 폰 셰비치│요제프 뮐러│뮌헨 신지학 총회│엘레우시스 성극

추도사_마리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의 전집 목록
옮긴이의 글

 

지은이 소개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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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1925.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지만 실은 철학과 문학에 심취해서 후일 독일 로스톡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이마르 괴테 유고국에서 괴테의 자연과학 논설을 발행하면서 괴테의 자연관과 인간관을 정립하고 심화시켰다. 정신세계와 영혼 세계를 물체 세계와 똑같은 정도로 중시하는 인지학을 창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추종자들의 요구에 따라 철학적, 인지학적 정신과학에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학문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인지학을 근거로 하는 실용학문에는 발도르프 교육학, 데메테르 농법, 인지학적 의학과 약학, 사회과학 등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가 포함되며, 그 외에도 새로운 춤 예술인 오이리트미를 창시했고, 연극예술과 조형예술을 심화 발달시켰다.
슈타이너는 자연과학자 헤켈, 철학자 하르트만 등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와 교류했다. 화가 칸딘스키, 클레, 에드가 엔데, 작가 프란츠 카프카, 스테판 츠바이크, 모르겐슈테른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 도르나흐에 세운 괴테아눔은 현대 건축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건축물로 손꼽힌다. 슈타이너의 저작물과 강연집은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으로 출판되고 있는데, 현재 약 360권에 이른다.

 

옮긴이 소개 

최혜경

본업은 조형 예술가인데 지난 20년 간 인지학을 공부하면서 루돌프 슈타이너의 책을 번역해 왔다.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림 그리고 번역하는 사이사이에 정통 동종요법을 공부하고, 약이 꼭 필요하다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있으면 처방도 한다. www.liilachoi.com

번역서_ 『발도르프 학교와 그 정신』(GA297)『자유의 철학』(GA4)『교육학의 기초가 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GA293)『발도르프 교육 방법론적 고찰』(GA294), 『세미나 논의와 교과과정 강의』(GA295)『발도르프 특수 교육학 강의』(GA317)『사회 문제의 핵심』(GA23)『사고의 실용적인 형성』『인간과 인류의 정신적 인도』(GA15)『젊은이여, 앎을 삶이 되도록 일깨우라!』(GA217),『죽음, 이는 곧 삶의 변화이니!』(GA182),『학교 보건 문제에 관한 루돌프 슈타이너와 교사 간의 논의』(GA300b)
저서_ 『유럽의 대체의학, 정통 동종요법』 북피아

 

책 속에서

p13-14

내가 관리하는 인지학계로 근래 들어 내 인생 노정에 대한 소문과 논평이 공공연히 엮여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 정신적 발달에서 변절한 부분이 있다 하면서 그 출처를 그렇게 나도는 소문에서 추측해 낸다. 이런 상황에서 지인들이 내 인생에 대해 직접 쓰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밝혀 왔다. 자서전 같은 것을 쓰는 것은 내 성향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행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내 개인의 사적인 면이 아니라 일 자체가 요구하는 대로 이루어 내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많은 분야에서 한 인간의 사적인 면이 그 사람 활동에 가장 가치 있는 색채를 부여한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기는 하다. 단, 개인의 사적인 면은 그 자체를 주목해서가 아니라, 그가 말하고 행하는 양식을 통해서만 드러나야 한다. 사적인 면을 주목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 스스로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내가 관리하는 것들과 내 인생 사이의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의견 몇 가지를 객관적인 진술로 올바르게 조명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왜곡된 의견을 주시해 보면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재촉하는 것 역시 근거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p33-35

내게서 차츰차츰 발달된 견해가 하나 있는데, 그 첫 싹이 기하학에 대한 내 관계에서 텄다고 확신한다. 그 견해는 벌써 어린 시절부터 다소간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살고 있다가 20세를 전후해 완전히 의식적인, 일정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이렇게 말했다.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대상과 과정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 이 공간이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바와 똑같이 인간 내면에는 일종의 영혼 공간이 존재한다. 이 영혼 공간은 정신적 존재들과 정신적 과정을 위한 무대다.” 나는 사고내용에서, 인간이 사물에 대해 만드는 그림 같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영혼 무대 위에서 정신세계가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인간에 의해 생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완전히 별개로 독자적인 의미가 있는 앎, 나한테 기하학은 바로 이런 앎으로 보였다. 물론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인간 내면에도 정신세계에 대한 앎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게는 정신세계의 실재가 감각 세계의 실재만큼이나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이 생각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정신세계에서 하는 체험은 감각 세계에서 하는 체험과 마찬가지로 전혀 미혹이 아니라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기하학을 배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영혼만이 자체적인 힘으로 체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기하학에서 알아볼 수도 있겠다.” 내가 체험한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감각 세계에 대해 말하듯이 말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그 느낌에서 발견했고, 그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내게는 두 가지 표상이 있었다. 그 표상은 확실하지는 않았어도 여덟 살이 되었을 때부터 이미 내 영혼 생활 안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물과 존재들을 사람들이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으로 구분했다.

p204

그 나중에 출판된 『자유의 철학』 이 바로 그 시절에 여물었다. 앞서 언급한 「자연과 우리의 이상」에 대해 델레 그라치에 앞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의 편지를 썼다. 바로 이 문장에 『자유의 철학』 원세포가 담겨 있다. “우리의 이상은 더 이상 그렇게 얄팍하지 않은 바, 흔히 너무 진부하고 텅 빈 실재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바로 그 깨달음에서 생겨난 깊은 염세주의를 떨쳐 버릴 고양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 세계를 바라볼 때, 이상적인 세계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설 때, 그 고양은 성취됩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완벽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외부 대상물의 무상함을 통해서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이상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개별성이라면, 자연의 은혜나 저주로부터 독립적인 그 자체로서의 존재가 아닐까요? 사랑스러운 장미꽃 이파리가 잔인한 돌풍에 찢겨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장미는 그 소명을 채운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적인 자연이 내일 들이닥쳐 별들 가득한 하늘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p293

내 인생의 첫 번째 주기를 회상하며 흡사 바깥에서 관찰하듯이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 떠오른다. “숙명은, 서른 살이 되도록 외형상의 ‘직업’에 매달리지 않는 쪽으로 나를 이끌어 갔다.” 바이마르 괴테 유고국과 실러 유고국에도 평생을 종사해야 할 직업이라 여기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소피 대공녀가 내린 지시에 따라 유고국이 진행한 괴테 전집 발행 사업에 자유 기고가로 들어갔다. 유고국장은 괴테 연감 12권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890년 가을부터 빈 출신 루돌프 슈타이너가 상주常住 기고가로 합류했다. 슈타이너는 (골학을 예외로 한) 『형태학』 전 영역을 떠맡았다. 이는 바이마르 유작 필사본 중 극히 중요한 자료가 담길 ‘두 번째 부분’ 전 5권, 혹은 예상 하건대 전 6권에 해당한다.

p361-362

바이마르 시절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세계관이 내 영혼 앞에 등장했다. 세상과 인생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라 생각되면 누구든 간에 나는 그와 함께 그것을 화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로 그런 종류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이 수없이 바이마르를 거쳐갔다. 영혼이 집중적으로 사회 생활을 추구하고, 또한 그 생활과 견고하게 결합되기를 바라는 연령대에 바이마르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 펼쳐진 세계관들은 내게 한 조각의 외부 세계가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때까지 내가 외부 세계와 거의 아무 관계도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까지 내게 익숙했던 세계는 내면에서 관조하는 정신세계일 뿐이었다. 특히 바이마르 시절 활기에 넘친 교제에서 물러나 혼자가 되면 그것을 더 명백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은,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로 가는 길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말해야 하는 쪽으로 자주 기울었다. 이를테면 과학에서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외적인 정보 같은 것을 기억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어떤 자연 대상물이 있다면, 그 명칭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어느 계통에 속하는지 등을 무수히 반복해서 보고 외워야 간신히 기억할 수 있었다. 감각 세계가 내게는 그림자나 그림 같은 어떤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세계는 그림으로 내 영혼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반면에 정신적인 것과의 결합은 완전히 진정한 실재적 성격을 띠었다.

p509-510

앞 장에 서술한 영혼 격변과 더불어 인생의 두 번째 주기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숙명의 길이 그때까지와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다. 빈에서뿐 아니라 바이마르 시절에도 숙명의 외적인 증후가 내면의 영적인 추구 내용과 서로 섞여 흐르는 방향에 있었다. 비록 내적인 불가피성이 고찰을 사실상의 정신 영역까지 확장시키지 않도록 명했다 해도, 정신에 상응하는 세계관의 기본 성격은 모든 내 저서들 속에 살고 있다. 빈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아 생겨난 목표 설정만 있었을 뿐이다.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관계하는 일을 했을 때는 내가 그 일을 위한 과제라고 고찰한 것만 작용했다. 어디에서도 내 방향과 외부 세계에서 오는 방향을 애써서 조화시켜야 할 의무가 없었다. 내게 명확해 보이는 방식으로 자유의 관념을 사유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그러한 인생 노정에서 나왔다. 비록 자유의 관념이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기는 했어도, 그 때문에 편파적으로 그것을 고찰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관념은 객관적 실재에 부합한다. 그리고 인식 추구가 양심적이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그 관념으로 체험한 것이 객관적 실재를 변질시킬 수 없을뿐더러, 그 강도에서 다소간에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이 객관적 실재를 투시할 수 있게 만든다.

p642-643

인지학에 대해 어떤 말이 항간에 오가는지 고찰해 보면 언제나 다음과 같은 생각만 읽어 낼 수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세계 대전으로 인해 온갖 ‘신비주의’나 그와 유사한 정신적 사조가 생겨나는데 유리한 정서가 사람들 영혼 속에 조성되었다. 인지학도 그런 사조 중에 하나로 꼽힌다.” 그런 생각과는 다른 기정사실이 있다. 인지학 운동은 이미 세기 초반에 시작되었고, 그 이래로 내적인 정신생활에 의해 유발되지 않은 것은 인지학에서 본질적으로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인상에 관한 내용은 이미 사반세기 전에 내 내면에 담겨 있었다. 강의와 논설, 저술물을 통해 그 인상에 형태를 부여했다. 내가 행한 일, 그것을 나는 오로지 정신적인 자극에 따라서 했다. 본질적으로 보아 모든 주제를 정신에서 건져 올렸다. 세계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그 시대적 사건이 계기가 된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이는 정신세계에서 나온 인식으로 특정한 시대 사건을 조명해 달라는 사람들 요청을 따랐던 것이지, 인지학을 확산시키기 위해 시대 정서를 남용하겠다는 의도가 그 저변에 깔려 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마리 슈타이너의 추도사 중에서

인류를 위한 희생 임무에 완전히 헌신한 그의 삶에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적개심으로 보답했다. 그리고 그의 인식 노정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인류 전체를 위해 그 길을 걸어갔고, 또한 정복했다. 그가 인식의 한계를 돌파했기에,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그 인식의 길이 수정처럼 맑은 사고의 빛 속에 놓여 있으며, 이 책이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인간 오성을 정신으로 높이 들어 올렸고, 그것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았고, 우주의 정신적 존재들과 연결시켰다. 이로써 그는 가장 위대한 인간 행위를 완성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신의 행위를 우리에게 가르칠 줄 알았다. 이로써 그는 가장 위대한 인간 행위를 완성했다. 지옥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악마적인 힘 모두로 그를 증오하지 않고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에게 다가온 몰이해에 사랑으로 보답했다.

옮긴이의 글(전문)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인지학 협회>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협회 건립자이며 정신적 스승인 루돌프 슈타이너에 관한 기이한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일반 회원들은 그런 소문에 심리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을 염려스럽게 지켜본 측근들 요구에 따라 루돌프 슈타이너는 1923년 12월 9일부터 협회 주간지 『다스 괴테아눔Das Goetheanum』에 인생 노정을 돌아보는 글을 매주 발표하기 시작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서거한 후인 1925년 4월 5일까지 총 78회 연재된 『내 삶의 발자취』는 1907년 뮌헨 신지학 총회에 관한 이야기에서 멈춘다. 비록 이 총회가 인지학을 표면화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어도 <인지학 협회>는 1912년 12월에야 창립되었으니, 루돌프 슈타이너가 공식적으로 온전하게 인지학 활동을 할 여건이 되기 전까지의 인생만 이 책에 쓰여 있는 것이다.

인지학의 내적인 본질 혹은 그 진정한 성격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하나는 인지학적 정신과학의 연구 방법이며 다른 면은 연구 결과다. 문제는, 연구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연구 결과 역시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인지학적 연구 방법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자유의 철학』이다. 이 연구 방법이 어떻게 생겨나 완성되어 가는지, 그 과정이 여기 『내 삶의 발자취』에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사람들이 ‘자서전’을 읽을 때 보통 기대하는 내용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극히 사사롭게 보이는 일화도 인지학에 이르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정신적 발달을 그리는 요소 역할을 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루돌프 슈타이너에게는 정신세계가 물질 세계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었다. 아동기에 그는 주변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하는 그 세계가 정말로 있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를 위해 정당화하고자 애를 쓴다. 그렇게 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기하학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소년 시절 기하학에서 ‘순수하게 정신 안에서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 처음으로 행복감을 맛보았다’ 고 고백한다. 기하학에 대한 이 관계에서 자란 싹은 철학과 자연 과학에 몰두한 청소년기를 거쳐 18세에서 20세 사이에 ‘인지학적 정신과학의 신경’ 으로 여문다. 20대 청년기는 학업, 과외 수업과 가정 교사 일, 괴테 자연과학 논설 발행 등 다양한 외적인 활동과 교제에 더해 정신세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 번역하는(?) -길을 발견하기 위한 내적인 씨름으로 채워진다. 마침 바이마르 괴테 전집 발행이 마무리될 무렵 그 표현 방법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게 되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과학적 결과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하고 베를린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간행물을 발행하는 동시에 당시 문화 예술계에서 강의 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넓혀 머지않아 를 <신지학 협회 독일 지부>를통해 인지학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내 삶의 발자취』는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350여 권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다. 할 말은 전부 썼을 법한 두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가 초고를 번역했을 적에 몇몇 부분에서는 극히 중요한 주제인 것 같은데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을 아끼면서 아주 짤막하게 쓰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 해서 수수께끼처럼 남는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여러 해에 거쳐 해당 주제에 관한 다른 강의서를 읽은 후에야, 『내 삶의 발자취』가 원래는 주간지 『다스 괴테아눔』에 연재된 바 인지학 내용에 정통하지 않은 일반 회원들이 소화하기에 너무 벅찬 내용은 가능한 한 자제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 수수께끼 같은 부분에 더러는 옮긴이가 각주를 덧붙였다. 이것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화두로 삼을 계기를 주지는 않겠는가?

이 책에 많은 것이 옮긴이의 인지학적 배움을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옮긴이 영혼을 번개처럼 내리친 두 가지 관념이 있다. 관념의 생동성이 과연 어떤 모양을 띠는지 문자 그대로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만들었기에 옮긴이가 두고두고 마음속에 품고 다니며 인간 생활을 관찰하는 기준으로 삼는 그 두 가지는 물질주의적 사고 가치와 의지 가치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살아 생전 육체적으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영혼이 있다. 그 중 한 영혼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친구 부친이고, 다른 영혼은 바이마르에서 만나 나중에 결혼한 안나 오이니케의 첫 남편이다. 이 두 사람에 관해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당대 물질주의와 결합된 상태를 고려해 보면, 그 두 인물의 경우 그 결합이 전적으로 관념 세계에 한정되어 있었다. 물질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생활 방식,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지배적인 생활 습관을 그 두 사람 모두 따르지 않았다. … 보통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고, 그들이 지닌 부가 허용한 것에 비해 아주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물질주의적 의지 가치와 결합된 상태가 그들 정신적 개인성에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적 사고 가치가 그들 개인성 속에 심은 것만 가지고 정신세계로 들어갔다. … 나는 물질주의적 사고 가치가 죽은 후에 인간을 신적, 정신적 세계에서 멀어지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아보았다. 오직 물질주의적 의지 가치를 통해서만 인간은 정신세계에서 멀어진다. … 그들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물질적인 것을 엄밀하게 숙고할 수 있게 하는 관념을 습득했다. 그렇게 습득한 관념은 죽은 후에 사는 세계에 대해서도 역시 판단이 가능한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이 적절한 관념을 잘 알지 못했더라면, 그 관계는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 두 영혼 속에서 정신적 존재들이 내 숙명의 길에 들어섰다. 그 존재들을 통해서 자연 과학적 사고 양식의 의미가 정신세계로부터 직접적으로 밝혀졌다. 자연 과학적 사고 양식 자체는 정신에 상응하는 관조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독일에서 살다 보면 인지학이 생활 속 깊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실감한다. 인지학적 농법에 따른 데메테르Demeter 농산물을 먹고, 인지학계 의류 회사에서 생산한 순수 자연산 옷을 입고, 인지학적 건축 예술로 지은 아름다운 집에서 살 수 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인지학계 병원에 가면 된다. 어느 도시에나 인지학계 의사와 간호사가 있고, 다양한 인지학계 치료 방법이 일반 병원에서도 적용된다. 제약회사 발라Wala와 벨레다Weleda는 비밀스러운 인지학적 동종 요법으로 약품을 생산한다. 아이는 발도르프 유치원과 발도르프학교에 보내고, 특수 교육이 필요한 경우 증상 정도에 따라 세분화된 발도르프 특수 학교가 지역마다 하나 정도는 있다. 인지학계 기관에서 직업 양성도 하고, 인지학계 대학교에서 전문 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 농장이나 작업장이 딸린 인지학계 장애인 생활 공동체가 곳곳에 있고, 일반 시설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으로 운영되는 양로원과 휴양소도 있다. 돈은 인지학계 게엘에스GLS 은행에 맡기면 윤리적으로 관리될 것이니 양심에 찔릴 필요가 없다. 인지학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도 도시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인지학계 슈퍼마켓 데엠DM이나 알나투라Alnatura에 가서 하우쉬카Hauschka, 발레아Balea, 알베르데Alverde 등 인지학계 회사에서 생산된 화장품, 세제 등 잡화를 구입할 수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도 인지학계 먹거리와 잡화가 팔린다. 심지어 인지학계 교회와 목사도 있으니, 재정 상태가 허락하는 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지학적 열매로만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 말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지구 환경을 보호할 뿐 아니라 질까지 훌륭한 산물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소비 생활을 통해 루돌프 슈타이너의 고독도 덜어졌을까? 이 질문에 옮긴이는 그렇다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내 삶의 발자취』에서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주 고독한 심정을 토로한다. 자기는 친구들 영혼 속으로 가차 없이 뛰어들어 그곳에서 ‘집에 온 듯이 편안하게 느끼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자기 정신세계를 방문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 속에서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물질을 소비하는 데에 -즉 의지 가치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엄밀하게 숙고하도록 만드는 관념을 습득한 -즉 사고 가치를 살아내는- ‘인간’을 고대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인지학적 열매를 따 먹으며 그 단맛을 즐기기만 할 뿐, 힘든 사고 노동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하지 않는가? 인지학이 이른바 친환경적으로 확장된 의지 가치 쪽으로, 더 정확히 말해 산업화된 국가에 중산층의 질적인 소비 성향을 강화하는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거의 오남용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한국은 그 구조적 조건상 소비 성향이 훨씬 더 강하다. 인지학을 그 연구 방법부터 배워 스스로 생각해서 지역에 적합한 인지학적 문화를 개척한다는 것은 그런 분위기에서 꿈에도 떠오르지 않을 일이다. 그러므로 세대가 세 번이 채 바뀌기도 전에 능동적 사고 활동의 부재로 인해 노화 증상을 보이는 독일 발도르프학교를 모방할 수 있으니 ‘실용적’이다. 뿐만 아니라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각종 ‘발도르프 아이템’은 꽤 괜찮은 수익성까지 보이니, 이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렇게 정신 문화가 상품으로 소비되는 곳에 거의 700쪽에 달하는 이 ‘골치 아픈’ 책을 던져 넣는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 누군가는 이 책과 더불어 정신 속에 연꽃을 피워 루돌프 슈타이너의 길동무가 되어 그의 고독을 조금은 덜어줄 것이라 확신하기에, 8년 전에 초고를 마친 이 책을 출판될 기약이 없음에도 수없이 교정해 왔다. 그러므로 가장 큰 고마움은 지난 10년 동안 옮긴이의 작업을 변함없이 후원해 온 사람들 몫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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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I - 광학

  2. 청소년을 위한 교육 예술

  3. 7~14세를 위한 교육 예술

  4. 내 삶의 발자취_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5. 신지학-초감각적 세계 인식과 인간 규정성에 관하여

  6. 꿀벌과 인간

  7. 인간 자아 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8단계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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